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365 Days/기록

나는 원래 게 같다.

by 모콘치 2021. 1. 6.
나는 원래 게 같다.

 

 

10여 년도 훨씬 전에 일이다. 온 가족이 양말을 두 겹씩 덧대 신고 챙이 넓은 밭매는 모자로 여린 얼굴을 보호하며 한껏 무장하고 향하는 곳이 있었다. 그곳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우리 남매에게 최고의 자연놀이터인 오이도였다. 엄마, 이모는 빨간 대야 한 통씩을 들고 나는 동생의 손을 야무지게 잡았다. '내 손 꼭 잡아. 넘어지면 안 돼.' 개펄은 친해지려면 시간이 걸린다. 특유의 질퍽한 감촉 때문에 우리 남매는 첫 발을 디딜 때마다 큰 숨을 쉬고 하나 둘 셋에 맞춰 들어가곤 했다. 제법 개펄에 익숙해질 것도 같은데 유난히 겁 많은 남매였기에 갈 때마다 동생은 내 손을 잡았다. 그리고 썰물 동안 엄마와 이모는 조개나 게를 대야에 가득차게 잡았고 남매는 도랑에 주저앉아 흙을 파거나 가끔 발견하는 게에 소스라치게 놀랄 뿐이었다. 

어느 날도 오이도 바닷가였다. 그 날은 사촌 언니의 동행으로 동생 케어로부터 자유로운 운 좋은 날이었다. 평소와 달리 바닷물이 찰랑찰랑하게 빠지고 있는 개펄 바다 끝까지 혼자 걸어가게 되었는데 그곳엔 개펄 초입보다 더 신기한 생물체가 많았다. 미끌거리는 달팽이 같은 조개도 있고 게 도 더 큼지막했다. 게를 잡아보겠다고 손을 뻗는 순간 마치 내가 자신을 잡을 줄 알았는지 땅속 구멍 집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. 개펄 초입에 있는 게들과 달리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깊은 곳 게 들은 조용하고, 더 겁이 많았다.  그리고 12살의 나는 중얼거렸다. '나랑 똑같은 성격이구나.'

12살의 나는 바닷속에 사는 동물들을 동경했고 다음엔 바다동물로 태어나고 싶다는 어처구니없는 상상까지 할 정도였다. 그렇지만 명확하게 내가 왜 바다 동물로 태어나고 싶어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. 짐작컨대 매일 같이 체력이 핑핑 도는 남동생과 씨름하며 조용히 스티커 붙이고 노는 걸 좋아하던 내게 세상이 시끄러웠을 가능성이 크다. 

최근에 나는 그 시절 중얼거림이 불현듯 떠올랐다. '나랑 똑같은 성격이구나.' 그렇다. 나는 게 와 비슷하다. 딱딱한 갑옷으로 무장한 척 하지만 기껏 사람의 치아에 쉽게 으스러지는 약한 몸체, 외부의 작은 압력, 움직임에도 소스라치게 놀라 땅 (집)으로 후다닥 몸을 숨기는 스티로폼 멘털. 황당하게도 다슬기 쪄먹는 영상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. 째깐한게 무엇에 그렇게 겁이 났을까? 고작 10년 남짓 살았는데. 

째깐한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며 나는 왜 쉽게 무너지는지에 깊게 성찰해 보았다. 많은 생각의 짐을 나에게 쥐어주지 말자. 나는 원래 게 같은 성격이니 작은 풍파에도 집에 가고 싶은 것이다. 나는 원래 게 같은 사람이니 갑각류처럼 딱딱해 보이지만 내장까지 모두 영양분이 되는 알짜배기 인간이다. 나의 가치를 잘 모르면 저기 있는 패스트푸드 같은 사람들에게 가렴.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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